* 이 글은 최신 개봉작 < 맨 인 더 다크 >의 내용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를 보기 전까지
동기는 단순했다. 공포 영화가 보고 싶었다. 두 달 정도 나를 괴롭힌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하루 하루 미뤄두었던 과제는 어딘가에서 소리도 없이 쌓이고 쌓이다가 마침내 형체를 갖추어 나를 짓밟아버렸다. 보고 싶지 않아 내팽겨쳐진 원한에 대한 앙갚음을 나는 지난 두 달간 온 마음으로 받아내었다. 고약한 그 놈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행복이든 슬픔이든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리하여 평소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을 탈출구 삼아 그 테두리를 벗어나고팠으며, 이 생각이 바로 공포 영화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은 많은 공포 영화 중에서 <맨 인 더 다크>를 고르게 하였다. 물론 <미스 페레그린>도 볼 예정이다. 이쯤에서 나는 페이스북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깨닫게 되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단순했다. 빈집털이범들이 맹인의 집을 털다가 역관광당하고, 추격하는 맹인으로부터 달아나는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다. 귀신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맹인이라는 신선한 소재가 결정적으로 나의 결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맹인과 빈집털이범 간의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을 기대하며 두 커플 사이 조그마한 좌석에 앉았다.
- 영화를 보면서
사실 나는 그다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삶에 지쳐 감정의 해방을 목적으로 관람했기에, 나의 관심은 언제 그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가였다. 그러하므로 영화의 중반까지 나는 점점 더 불쾌해졌다. 알 바 아닌 디트로이트의 경제 침체 및 가정 붕괴, 미간이 좁아 공연히 숨쉬기 힘들어 보이는 남주의 찌질한 짝사랑은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지 않음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장면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덕분에 이 영화의 관람객은 남주가 달아나지 않고 여주를 구하기 위해 돌아오거나, 여주가 돈을 훔치기 위해 달아날 시간을 지체하는 장면에서 답답함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답답하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영화의 개연성을 채워넣는 초중반에 큰 답답함을 느겼다. 없다시피한 배경 음악과 단 한 번 삽입된 놀래키는 장면이 이러한 답답함을 부추겼다.
이야기가 진행되어 맹인의 집을 털게 되었을 때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맹인의 정체가 실은 퇴역 군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맹인이라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할 겸 그는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온 역전의 용사였다. 맙소사, 군인이 주역인 미국 영화라니! 만약 시간을 거슬러 그 정보를 미리 접했다면 나는 주저없이 결제를 취소하였을 것이다. 내 아까운 11500원... 하지만 이미 나는 영화관에 앉아 있었고, 말 그대로 11500원이 아까웠기에 나는 관람을 계속했다.
"그는 퇴역 군인인데, ..."의 말을 남주에게서 들었을 때 내가 예상했던 흐름 그대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방의 액자에 있던 사진에선 머리가 검은 반면 맹인은 머리가 다 바랜 노인이었다. 그렇다면 십 몇년은 족히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인데 이 노인의 근육은 장난이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근육질은 일대일의 싸움에서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당위를 드러냈다. 또한 그는 침착했고, 기민했다. 어두운 집 안에서 그는 가만히 서서 미간과 귀와 코를 찡그리고, 희미한 불빛이 그의 고개가 몇번 공간을 가르지르는 것을 비출 때, 나는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감히 숨을 내쉴 수 조차 없었다. 괜히 이 영화의 원제가 <Don't breathe>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장면이 너무 남발되었다는 것이다. 인물이 숨는다, 노인이 찾는다, 소리가 난 후에 노인이 들이닥치고 인물은 도망치거나 숨거나 맞서 싸운다. 이 과정이 두세번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군인이라는 이름 하에 노인이자 맹인인 이가 공포 영화의 괴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이를 강조한 것은 신선했으나, 반복된 강조는 나에게 작위적으로 보였고 끝내 공포로 이어지지 못했다.
어둠에서의 싸움, 개의 조력, 노인의 강간 등은 앞서 내가 지적했던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장치들 덕분에 나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마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좀비처럼 서 있는 노인에게 어둠을 이유로 더듬거리며 다가가는 여주나 막대기에서 끈적하게 떨어지는 정액은 영화의 다른 장면과 특질적으로 다른 감흥을 담은, 이른바 미장센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세 요소 모두 내 기대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맹인이 주역이며 제목이 <맨 인 더 다크>이기에 어둠에서 오는 절망을 예상했던 나에게, 뿌연 회색으로 보여지는 지하실은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았다. 물론 시각 예술인 영화에서 내가 원했던 어둠을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한 한계에 유의미하게 도전하지 못했더라면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안되었다. 물론 한국의 영화 배급사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긴 하지만. 노인의 강간 장면 또한 나의 의식을 환기시켰을 뿐, 나는 오히려 그 장면에서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보아도 정액이 담긴 막대기는 공포 영화에서 톱이나 도끼가 해내었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개다. 거동과 시각이 불편한 노인을 대신하여 신속하고 집요하며 날카로운 이빨은 가진 개는 노인의 결점을 보완하여 공포의 악역 역할을 메꾸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것은 그 개가 갑자기 등장하거나 뛰는 장면뿐이었다. 개가 가진 본연의 무기인 이빨이나 발톱은 화면에서 잡히지도 않아 공포를 조장하지 못했고, 표정 또한 차라리 사랑스러울 지경이었다.
- 영화를 보고 난 후
1.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검색을 생활하하자
2. 정말 공포스러우면서 끔찍한 영화 추천 부탁드립니다. 완전 고어물이나 귀신이 주가 되는 영화 보다는 사람 심리를 파고들어 효과적으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그런 영화 없을까요?


덧글
말씀하신대로 공포영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맨인더다크는 엔딩을 끝으로 메세지와 다이하드스런 전개의 특유의 쫄깃함을 남기며 본연의 임무를 다한 편입니다.
디트로이트의 풍경과 주인공의 가정사는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개연성과 공감을 살림과 동시에, 주인공의 구원(디트로이트를 떠나는 것)을 표시해줍니다. 여기에 그걸 방해하며 끝까지 발목을 잡는 요소(맹인노인)를 더합니다. 노인이 스포이드를 들기 전 말하는 특유의 철학(빼앗긴 놈에게 되찾는다는 심리)은 주인공의 한탕주의를 꾸짖는 동시에 이 행동 외에 디트로이트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기에, 그 한마디는 주인공의 숨통을 더 죄어오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맨 초반 씬은 영원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절망감을 심어주고, 엔딩에서 잠깐 보이는 누군가의 머리도 주인공이 결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며 불안감을 자아내죠.
이처럼 공포영화나 스릴러영화중에 심리적으로 파고들지 않는 영화란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한 겁니다. 뭐든지 때려부수고 싶은 답답한 상태인데 거기에 심리적 공포가 먹힐리가 있나요. 이에 관해 허지웅씨가 이전에 남긴 칼럼이 다시 떠오르는데, 그럴때 보는 영화는 스플래터영화가 좋습니다.
[현대인의 도덕적 타락과 그에 상응하는 지나친 댓가]라는 주제는 맨인더다크와 비슷하긴 합니다. 다만, 맨인더다크보다는 시각적인 공포와 자극적인 요소를 넣어 환기를 시켜주는 편이라 추천하는 겁니다.